문화복지가 부족한 전북이라고는 하지만 잘 찾아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즐길거리들이 많습니다. "전북엔 놀거리가 없다" "전북에선 문화생활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오는 반박논리이기도 한데요. 전라북도 도립미술관을 시작으로 전북예술회관, 교동아트, 문화영토 판, 우듬지 소극장,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등 곳곳에 즐길거리, 볼거리들이 의외로(?) 넘쳐나는 곳이 바로 전북입니다. (사실 전주에 한정적인 면이 많긴 합니다만).

 문화공연은 많지만 볼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역설적인 현실.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상황은 정말 공연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이런 공연들의 존재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일까요?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문제가 아닐런지?



피카소 그림보고 '개발괴발'이라 생각한 이유

 사실 양측의 의견 모두 맞습니다. 우리 지역엔 생각보다 많은 공연이 있지만, 아직 사람들이 그런 공연들을 100% 이해하고 있진 못합니다. 그저 TV나 현수막 광고 등을 통해 유명가수의 콘서트나 뮤지컬 공연을 알게 될 뿐, 비교적 작은 공연이나 전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문화계 사람들은 이들 공연을 잘 알릴 수 있는 전용 어플리케이션이나 홈페이지 등을 만들어 잘 알릴 필요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물론 공연에 대해 잘 알릴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공연과 전시들을 접하고, 누리고, 즐길 수 있겠죠. 그러나 단지 알리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공연이 어디서 어떻게 열리는지만 알면 사람들이 그것을 충분히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일까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공연에 대해서도 알고, 문화를 즐기고도 싶지만 문화가 너무 '어려워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개인적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라고 해서 무척이나 기대하고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저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적지 않은 입장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카소의 그림은 그저 기괴한 '개발괴발' 그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청색시대' '황색시대' 등 피카소의 그림인생과 더불어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었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제게는 그저 '파란그림' '누런그림'으로밖에 다가오질 않았죠. 제 자신의 무지로 인해 전시 구경이 지루해질 때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약 2시간 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전시장을 돌며 작품과 전시에 대해 설명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마침 시간이 맞아 큐레이터의 소개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죠. 큐레이터의 설명은 마치 마법같았습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던 전시가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피카소가 '파란그림'을 그렸을 때의 심리상태와 상황, 생각을 듣고 나니 그림이 한층 달라보이더군요. 그가 왜 원근을 무시하고 그림을 그렸는지, 왜 특정 색상에 주목한 그림들을 그려냈는지 이해하고 나니 피카소의 그림이 점점 제 빛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큐레이터, 대중과 문화의 가교

 저는 아직 그 때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의 존재는 확실히 문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우리 지역 문화에 대해서도 큐레이터가 있으면 어떨까. 세계적인 옵아트의 거장이 전시를 한다고 해도 그리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유는, 가봐도 그저 '저게 뭐야'라는 생각을 할까봐 그렇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가치를 담아 이런 작품들을 만들었는지 알기엔 제 지식이 너무나 얕고 짧습니다.  

 우리 지역 공연과 전시에도 큐레이터가 있다면 어떨까요? 있는 곳도 있겠지만 없는 곳도 많습니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으로 대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큐레이터가 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를 보기에도, 지식이 얕아 겁을 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전시나 공연은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나 연극과 달리 그 깊이가 다릅니다. 그래서 누구나 즐기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처럼 말이죠) 서울보다 문화적 인프라가 더 부족한 지역의 경우엔 큐레이터의 존재가 더욱 더 의미있고 필요합니다.

 전시도 좋지만, 전시의 존재이유는 작품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중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돕는 큐레이터의 존재는 필수적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로 큐레이터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전시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문화와 대중의 가교인 큐레이터. 지역문화의 발전에 그들의 존재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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